본문 바로가기

글들

낙담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기운이 들었을 때는 저녁이었다. 지난 밤 두통약을 먹고 겨우 잠들었다고 생각했는데 계속 뭔가 얕게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나는 것으로 보아서는 새벽녘에야 잠에 든 모양이다. 그나마 자고 일어나니 두통은 머리에서 가신 것 같은데 여전히 기분은 좋지 않았다.
어둠 속에 갇힌 듯 일은 답답하기만 했고 바꿀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놓치고 있는 것이 하나로 시작해 여럿으로 번져나가는 탓에 마치 장막에 갇힌 듯, 옥죄이는 느낌도 나를 괴롭혔다. 어딘가 기댄다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고 그나마 이야기를 털어 둘 곳은 존재하지도 않았다. 일종의 소극적임과 낙담들은 자꾸만 나의 자리를 좁혀갔고 나 스스로를 등지게 하였다.

- 무엇이 문제일까.. 나는 아직도 모르겠다.

알약을 한 알 더 삼키고 자리에 다시 들었다. 그 좋아하던 독서도 음악도 자리에 놓은지가 며칠이나 되었고, 책상 위에는 휘갈겨 쓴 메모가 몇 장이 있는게 보였다.

- 해소를 위해 쓸데 없는 짓을 해도 소용이 없다.

어릴 적부터 토로의 상대가 없으면 기분을 정리할 땐 끄적이는 것으로 풀곤 했는데, 이마저도 소용이 없다.

뭔가에 떠밀려간다는 기분은 나를 지치게만 만들었다. 사고하는 대로 살지 않고 사는대로 사고하게 된다는 말을 체감하고 있지만 그 틀을 깨고 나오기가 쉽지가 않았다.

무언가를 잃어버린 것인가 생각을 해보지만 쉽지가 않다. 분명 너 말고도 많은 것을 잃어버린 나다. 이렇게 한심할 수가 없는, 시간들이 부끄럽다. 어딘가로 꺼져버리고 싶은 이 순간 나는 그마저도 어디로 가야할지, 고민만 하는 그런 자가 되었다.

홀로 일어나기까지 얼마나 시간이 들려하는지 궁금해하면서 다시 잠을 청했다. 아마도 자정 쯤 되면 약기운이 퍼져 두통이나마 가실 것이다. 그러면, 그 때쯤 다시 강해질지도 아니 제자리로 돌아올지도 모르겠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