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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들/작은 수필

이를테면 너 혹은 햇빛이 생각나는 오후

이를테면 너 혹은 햇빛이 생각나는 오후 


지나친 생각은 몸에 해롭다는 생각을 했다. 시간은 잘도 흘러 어느덧 생각이 많아지는 계절이 되었고, 힘찬 음악에도 문득 한걸음씩 늦추는 일이 많았다. 가을이 지나쳐 간 탓이다.


두 번이나 숙고하고 골랐음에도, 이 카페의 드립 커피는 커피의 맛 자체를 살리지 못하는 것 같다. 하지만 가게에서 일하는 바리스타 탓은 아닌 것이 그는 라떼 같은 다른 재료가 더 들어가야만하는 음료에 있어서는 수준급인데 왜인지, 커피를 내리는 실력은 형편이 없는 것이다. 그래도 이 커피를 시키는 이유는 이 가게에서 가장 쌉쌀하기에, 생각을 없애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래, 가을 내내 여기 머물면서 한 일이라고는 쓴 커피 한 잔에, 노트북을 열고 무슨 글을  써야하나 망설이다가 결국은 코드, 사진, 기계 등을 구경하곤 덮고 한 숨을 쉬는 일이었다. 그 짓을 가을 내내 주말마다, 일 생각이 나지 않는 한, 계속했다. 친구들은 그런 일을 그만 좀 하라고 핀잔 하였지만 마음이야 누군들 그렇게 생각지 못할까. 결국 그렇게 일에 매달린 덕에 가을이 다 지나고 난 지금은 후회가 막심하다. 어디론가 갔어야했다. 


그러나 주말조차 일의 연속이었고 그것이 스트레스의 근원이었기 때문에 빨리 해결하고자 매달렸고, 거기에 매몰되어 있었다. 돌이켜보니 바삐 지나간 것 같지만 과연, 그것이 나라는 개인에게 옳은 일인가? 단지 나는 긴장 속에서 그렇게 오랜 시간을 보낸 후라 그렇게 느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마디로, 힘든 시간이었다. 내게 속했던 사람으로 부터 그리고 내가 속한 사회로 부터. 


더군다나, 계절 가는 것을 나무, 꽃, 바람으로부터가 아닌 에어컨, 사람들의 의복으로 알았고 또 해가 짧아지는 것을 모르는 채 6시가 어디있는지 잊을 뻔 했다. 제대로 된 상황인가? 아닐 것이다. 결국 일년 내내 어지럽게 일을 겪고 나니, ‘나’를 그리고 나에게 신경쓰는 것을 잊은 것이다. 아, 이렇게 일에 묻혀버린 사람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도 몇 가지, 변치 않고 즐긴 것은 사계절 마시는 차가운 커피. 가끔 마시는 유자차와 예시보다 뜨거운 물을 부은 티, 탁 트인 창문 같은 것들. 세상에, 그렇게 좋을 수가 없던 것 같다. 그래서 이 카페도 그렇게 내 마음에 들었던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이제는 그런 일들을 겪고 나니 - 어느덧 해도 바뀌었고 - 다룰 수 있는 감정도 복잡 다단한 것부터 단순한 것까지 폭이 넓어졌고, 익숙한 것도 낯선 것도 스스로 토닥이며 지나가게 할 수 있을 정도로 마음이 단단해졌다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글쎄, 여전히 이 시간이 되면 따뜻한 기운에 설레고 문득 문득 예전 생각이 나는 것은 나의 모자름인가, 그저 감정적인 되새김인가 한다. 무엇이 되었든 지금 상황에는 그다지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닌데, 씁쓸한 커피와 달디 단 케이크를 부르는 것은 분명하다. 


오늘도, 노트북을 덮고 한 끼를 해결해야 할 해진 시간이 돌아왔다. 땅거미가 지고 난 뒤의 마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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