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비딕 - 허먼 멜빌 / Moby-Dick - Herman Melville
2012년 10월 2일 - 2013년 1월 3일
* 이 게시물부터는 새로 쓰는 게시물이므로 -습니다(아주 높임)를 쓰기로 합니다.
처음 이 책에 등장하는 캐릭터(그 이름도 세계에 알려진 스타벅)를 알게 되었을 땐 적잖이 당황했었습니다. 이게 그 이름이었나? 뭐, 그 프랜차이즈 로고는 인어 - 사이렌이니까. 텍스트로 된 이름 빼곤 연관성을 찾기 힘드니까 책까지 떠올리긴 어려운게 사실입니다. 이 책을 읽은 가장 큰 이유는 사실 그 스타벅(Starbuck)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자해서 였습니다. 겁도 없이 약 718페이지 짜리 장편 소설을 덜컥 그 인물 하나 보고 시작했습니다. 게다가 주인공도 아니고 조연급인데다가 자주 나오지도 않습니다. 그래도 꾹 참고 봤습니다.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캐릭터로서의 스타벅은 그 자체론 합격점. 에이해브나 이슈마일(사실 Call me Ishmael을 봤을 땐 그저 칭할 이름으로 쓰는 것 같습니다)이 광기에 사로잡힌 역할이거나 조금은 세상을 얕잡아보고 모험을 거듭하는 것으로 보이는 것과는 다르게 그는 이 책에 나오는 캐릭터 중에선 가장 현실에 충실한 사람이 아닌가 합니다.
고래에 대한 서적이 많지 않던 시절에 나왔던 자료적 가치가 컸던 소설이라고 하는데 그 명성에 걸맞게 방대한 고래에 대한 자료가 들어있습니다. 이슈마일이 구술로 전해주듯 쓰여있는 그 지식들은 고래에 대해 당시에 비해 많이 알려진 현대에도 읽는 이로 하여금 고래를 직접 관찰 하는 듯 한 느낌을 줍니다. 약간 아쉬운 것은 뱃사람들이 쓰는 물품이나 고래에 대한 서술이 머릿 속에 읽는 대로 그려지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어느 정도 매끄럽게 볼 수 있습니다.
이 소설은 보통 (소문으로는) 전체적으로 한 고래를 추적하는 이야기로 비춰지는데, 사실은 고래에 대한 정보들과 추적을 위한 여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백경을 처음부터 쫓거나 하지 않습니다. 절대로. 사냥 좋아해서 보시는 일은 없길.
삶에 대한 고찰과 고래에 대한 경외가 이 이야기의 중추에 깔려있으며 그것은 절대로 소설의 끝까지 깨어지지 않습니다. 험난한 것에 대한 도전? 도전은 이 소설이 다루는 가치가 아닙니다. 따지자면 복수입니다. 하지만 그 복수는 허망한 것이지요. 한 개인이 커다란 생명체, 나아가 군집하여 살아가는 고래 무리에서 마지막 여정을 위해 떨어져 나온 늙은 고래를 대상으로 펼치는 복수는 성공할 수가 없습니다. 소설 내내 이슈마일은 고래를 인간보다 큰 존재로 그립니다. (그래서 고래가 그렇게 불가항력적인가?라는 생각도 들게 합니다. 사냥을 하긴 하지만 그 압도적인 크기 때문에 고래는 죽어서 손질 될 때도 '피쿼드'호를 옆으로 완전 기울어 침몰되는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존재로 비춰집니다) 고래 앞에서는 그 어떤 개인도 나약해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을 그 고고한 고래의 생태를 통해 보여줍니다.
생명가치에 대한 언급 또한 없습니다. 포경업이 굉장히 지탄을 받고 있고 국제적으로 금지되고 있죠? 하지만 소설이 씌여진 시기를 보면, 그런건 없습니다. 그래서 이 생명에 대한 안타까움 그런 것은 들어있지 않습니다. 단지 고래, 고래기름, 용연향. 이득을 위해서 바다를 가르며 고래를 건져올리는 고래잡이만이 있을 뿐이지요. 그래서, 이 소설을 보고 불가항력에 대한 도전이나 바다에 대한 성찰이라고 하면 안됩니다. 성찰은 없습니다. 다만 독자가 생각하기에 느껴지는 이슈마일의 가치, 에이해브의 가치, 퀴퀘그의 가치 그리고 스타벅의 가치 중 누군가가 옳고 그른지 그리고 누군가의 인생에 대한 자세가 더 배울만한지가 더 중요합니다.
이 책에서 저자는 대신 생각해주지 않습니다. 사실과 이슈마일의 생각 그리고 관찰한 주변에 대해서 소상히 서술함으로써 소설의 기본 가치대로, '대리 경험'을 시켜주고 있습니다. 근 3개월을 띄엄띄엄 읽었는데 그 동안 대양을 누비며 함께 '피쿼드'호를 탔던 작중 인물들에게 감사를 돌립니다(...)
추가적으로, '피쿼드'는 신대륙에서 가장 먼저 멸망한 인디언 부족의 이름이라고 합니다. 저자의 말에서, 그런 이름을 가진 '피쿼드'가 '하얀고래'를 사냥하는 것은 우화를 통한 비판인가. 라는 이야기를 하는데, 독자에 따라서 동의할 수도 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어느 정도는 수긍이 갑니다. 그리고, 독자마다 느끼는 바나 인상 받는 곳들이 다를거라는 이야기도 말이지요.
인상 깊었던 부분 * Digest --
작가정신판, 김석희 옮김
[1] 579p 112장. (전략) 이런 인생에는 죽음만이 바람직한 결말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죽음은 미지의 낯선 영역으로 들어가는 것일 뿐이고, 무한히 멀고 황량한 곳, 육지로 둘러싸이지 않은 바다로 들어갈 가능성에 보내는 첫 인사일 뿐이다. 따라서 죽음을 갈망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아직도 자살을 꺼리는 양심이 남아있다 해도, 모든 것을 주고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바다는 상상할 수도 없는 흥미로운 공포와 새로운 활력으로 가득 찬 놀라운 모험의 광야를 그의 눈 앞에 유혹하듯 펼쳐놓는다. 그리고 끝없는 태평양의 깊은 곳에서는 수많은 인어가 그들에게 노래를 부른다.
"이리 오라, 비탄에 빠진 자들아. 수명이 다하기 전에 죽은 죄를 묻지 않는 새로운 삶이 여기 있다! 여기에 죽음을 겪지 않고도 볼 수 있는 초자연적인 경이가 있다! 이리로 오라! 지금도 여전히 미워하고 미움 받는 너의 육지 세계가 죽음보다 더 염두에 두지 않는 삶 속에 너를 묻어라! 이리로 오라! 교회 묘지에 너의 묘비를 세우고 이리와서 우리를 신부로 삼아다오!"
동쪽에서도 서쪽에서도, 새벽의 해뜰녘에도 저녁의 해질녘에도 이런 속삭임을 듣고 대장장이의 영혼은 대답했다. 아암, 가고말고. 그래서 퍼스는 고래잡이에 나서게 된 것이다.
이외에 인용할 곳이 없다기보다는 너무 많고 작품 하나로써, 따로 떼어 보고 싶지 않아 더 적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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