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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가 달린다 - 마크 롤랜즈 / Running with the pack - Mark Rowlands

철학자가 달린다 - 마크 롤랜즈 / Running with the pack - Mark Rowlands
2013년 9월 23일 - 2013년 12월 10일

이전 작 <철학자와 늑대> 이후 발간되자 마자 도서관에서 찾아 본 책입니다. 다행히 학교 도서관에 있어서...

한 줄로 감상을 대신하자면, '철늑'은 가지고 계속 읽고 싶은 드라마가 있는 철학책이고 이 책은 달리기 와중에 난 생각들을 (썼거나) 짜맞췄거나 한, 그런 느낌입니다. 다만, 워낙 사유를 이끌어가는 마크 롤랜즈의 글 덕인지 흡인력은 있습니다. 

이 책에서 주로 다루는 것은 본질, 사유, 몸과 같은 것입니다. 어쩌면 이 중 아예 나오지 않은 것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근데 저는 이렇게 읽은 걸요. (헉)

삶의 발달 과정이나, 성취의 과정 그리고 노화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기 때문에, 다양한 사유를 간접 체험해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존재합니다.

아무래도, 그 중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것은 본질에 대한 저자의 견해가 아닌가 싶네요. 또한, 일과 놀이에 대한 견해도 저에겐 인상 깊었답니다.



인상 깊었던 부분* Digest --
추수밭 판, 강수희 옮김

[1] 56
철학적 대답을 이해하려면 , 그것을 스스로 도출 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러려면 먼저 근원을 알아야 한다. 그 대답으로 인해 해결되는 문제의 강도와 긴급성을 알아야 한다. 이 문제의 다른 대안이 가지는 유혹도 알아야 하며, 어쩌면 어느 시점에서 이런 대안에 이미 굴복했을 수 도 있다. 이런측면에서 볼 때 철학적 대답은 다른 어떤 인간 지식이나 질문의 영역에서 제시하는 대답과도 확연히 다르다. (수학공식은 이해하기 위해서 도출 과정을 모두 알지 않아도 될때가 많다) 그러나 철학적 대답은 어떻게 도출하는지 그 과정을 모르면 진정으로 이해할 수 없다. (중략) 결국 이 대답은 우리 정신속에서 찾는 것이 아니다. 그 가치를 이해하는 것은 바로 우리의 피와 뼈 속에 있다. 삶이라는 문제의 의미를 느끼는 것은 살아가는 과정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살아가면서 삶이 무엇인지를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머리가 아니라 창자와 혀에서 느껴지는, 저린 뼈와 시린 피이다.
삶의 가치를 묻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삶을 구원해주는 것이 무엇인지를 말해준다. 이것을 이해하려면 먼저 정확히 무엇으로부터 삶이 구원받아야 하는지부터 알아야 한다. 이것은 우리가 어른이 되어가는 것을 느끼면서 이해하는 것이고, 피가 묽어지고 차가워지며 체력과 지력이 점차 줄어드는 것을 느낄 때 알게 되는 것이다.

[2] 59
데카르트와 그가 창시한 전통에 따라, 무언가를 안다는 것은 그것을 확신한다는 것이고, 그에 대한 한 점 의혹이 없다는 것이다. (중략) 의심과 우유부단의 공포가 차분하고 단호한 확신으로 바뀌는 순간은 가치의 경험에 근거하고 있는 것이다. (마땅하다.  는 것은 가치 판단에 근거하게 된다.)

[3] 77
존 윈덤 - <미드위치의 침입자들>
영국영화 저주받은 도시 (원작이 위의 작품)

[4] 102
질료인 / 형상인

조각상의 질료인은 조각상의 재료/형상인은 늑대, 개 또는 사람  등 그 조각상이 취하고 있는 형태나 모양.
대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누가 혹은 무엇이 그것을 만드느냐(작용인) 뿐 아니라 어떤 재료로 그것을 만드느냐(질료인)와 만들어진 형태가 무엇인가(형상인)도 알아야 한다.

[5] 136 choking yips

[6] 138  
일과 놀이의 구분은 활동이 무엇이냐가 아니라 그 활동을 하는 이유가 무엇이냐에 달려있다. 슐리크가 말했듯이  "인간의 행동이 일이 되는 것은 그를 통해 얻는 성과 때문이 아니라 그 성과라는 생각에 의해 추진되고 지배받기 때문이다. " 마찬가지로 어떤 행동이 놀이가 되는 것은 순전히 그 자체를 위해 그 행동을 할 때이다.

[7] 142
종교는 미루고 달리기는 경험한다.
달리기가 본질적으로 가치있는 것이라면, 달리기의 심장 박동은 경험적 상관물과 같은 것이다. 달리기의 심장박동을 경험하는 것은 본질적 가치를 경험하는 것이다. (이것은 곧 본질적 가치를 세상에 드러내는 것과 같다. -- 삶에서 자신을 드러내는 것은 중요하다)

[8] 206
삶을 발달의 과정으로 보는 것은 일반적인 경해이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우리는 삶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 나이와 함께 지혜를 얻고, 그렇게 얻은 지혜를 충분히 철저하게, 능숙하게 사용한다면 삶의 의미를 명확히 알 수도 있으리라. 반면에 젊음은 미성숙의 시간이다. 앞으로 다가올 삶을 위해 준비하는 과정이 핵심인, 존재의 전편이다. 모리츠 슐리크가 한 때 말했듯이 역설적이게도 '실현의 시간이 가장 고달픈데 비해 준비의 시간은 가장 달콤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