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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적이/나날

그냥 살아가는 날들

고개를 들었을 때는 얼마나 흘렀을까, 시간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였다. 정신도 없었고, 몸 상태도 그만큼 엉망인 채로 이사올 때 바득바득 우겨서 달아 놓은 암막 커튼이 닫힌 채로 며칠이고 지낸 상태였다.

 

생각해보면 우스운 일이겠지만 그래도 잘 버틴 꼴이었다. 한 달, 일 년 그리고 그 날이 오기까지 내가 하던 일들을 생각하면 그 정도는 '그래도 된다'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하니까 나중에는 내가 그렇게 행동한 것에 굳이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아도 괜찮았었다. 중요한 것은 그런 날들이 반복되었다는 것이다. 점차 그 횟수가 줄고는 했지만, 좋은 것을 보거나, 즐거운 일을 하면 늘 누군가의 생각에 나는 몸부림을 쳐야만 했다. 특히 감정이라는 것은 이성으로 통제가 불가능한 것이라서 다른 일을 하거나 다른 생각을 해서 집중력을 치우치게 한다고 해서, 내가 스스로를 힘들게 하는 시간이 줄거나 없어지지는 않았다. 그저, 시간이 지나도 시간이 답이라는 말만 귓전에 맴돌았다. 야속하게.

 

잘잘못을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기 때문에 그런 것은 차치하고서라도, 시간이 흐르면서는 누군가 미워할 대상이 필요했다. 그것이 스스로이든 아니든, 그래야만 이 감정이 출구를 찾고 떠나갈 것 같았기 때문인데, 생각해보면 어리석은 일이다. 아직 어린애처럼 감정을 컨트롤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는데 내 스스로 애정을 주던 것을 생각해보면 '미성숙하다'고 해버릴 정도로 내가 어리석진 않은 것 같고 그냥, 미움의 대상을 찾는 것이 어리석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한 것 같다. 게다가 감정을 컨트롤하라니, 나는 프로 축구 혹은 프로 야구 선수가 아니기 때문에 그럴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적어도 게임을 위해서 감정적인 조절을 할 수 있어야 하잖아. 하기야,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왕왕 있더라만은. 그래서, 감정을 어딘가에 내려 두는 연습을 시작했다.

 

그 연습이라는 것은 글을 쓰는 작업이었는데, 이것이 또 만만하지가 않았다. 사람이 한 번 용기를 잃으면, 그리고 그것이 많은 양의 용기를 사용중일 때 잃으면 모든 것이 말 그대로 허공으로 그것들 모두가 사라져 버린다. 다시 찾을 수도 없다. 돌려 받을 희망도 없다. 한 방면에서 깎아먹은 의욕 때문에 모든 방면에서의 의욕이 깨끗하게 사라져버리는 것이다. 이 감정이라는 놈이 벌이는 일이라는게 얼마나 허무한가. 한동안은 그런 비오기 전의 먹구름 가득 낀 어두운 저녁 같은 우울감 속에서 그저 폐 속을 들락대며 기분을 애매하게 만드는 눅눅한 공기를 즐길 따름이었다. 집 안에서 글이나 써야지 마음 먹었다가도, 마음을 울렁이게 하는 그런 종류의 무거운 바람을 맞이하면 곧 비가 되어 내릴 녀석도, 그 비를 한참 맞을 나도 불쌍해 보였기 때문에 글을 쓰려 폈던 노트북도 접는 수 밖에.

 

그 덕에 200자 이하의 글 만을 매일 매일 일기장에 적어 넣었다. 때로는 그리움, 때로는 추억, 때로는 사고의 결과.. 궁상의 꼭대기에서 아직 아래를 내려다보자면 뭐 그럭저럭 재미있는 생활이다. 철벽인 양 구는 것도 재미있고, 다만은 내 스스로 나를 표현해도 되는 사람을 찾아서 "나를" 보여주기가 힘들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 누군가에게 내 약점을 보여준다는 것에 지레 겁을 먹게 된 것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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